이명은 신태(信泰). 경상북도 상주군의 빈농 가정에서 태어났다.
일제의 착취를 피해 1928년 부모를 따라 만주의 길림성(吉林省)영안현(寧安縣)으로 이주하였다. 1933년 영안현 팔도하자(八道河子)에서 항일유격대에 입대하였고, 중국인 주보중(周保中)이 지휘하는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連軍) 제2로군에서 활동하였다.
유격대 내에서 어린 나이에 실력을 인정받아 18세 때인 1936년에 이미 동북항일연군 제2로군 제3사 9단 정치위원이 되었다. 만주에서 활동하던 항일유격대가 일제의 대토벌을 피해 소련 영내로 이동해 가서 결성한 동북항일연군 교도려(敎導旅, 일명 88여단)에서도 제2영 정치위원을 거쳐, 제4영 영장이 되는 등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았다.
광복 후 조국으로 귀환하지 않고, 조선족이 집중 거주하고 있던 동만지구(東滿地區)의 해방사업을 위해서 1945년 9월에 김창봉(金昌奉)·최광(崔光) 등을 인솔하고 연변지방으로 갔다. 연변에서 중국공산당 연변위원회 서기, 동북민주연군 길동군구(吉東軍區) 사령원 등으로 활약하다가 1946년 여름에 귀국하여 나남에 소재하고 있던 인민군 제2사단 사단장이 되었다.
1948년 2월에는 조선인민군이 창군되면서 총참모장으로 임명되었다. 1948년 3월에 열린 북조선노동당 제2차 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민족보위성 부상 겸 군 총참모장으로 6·25전쟁을 맞이하였고, 1950년 9월 8일 전사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그에게 영웅칭호와 국기훈장 제1급 및 금별메달을 수여하였다.